신앙고백(사도신경)/찬송408/기도(맡은이)/성경,5:4/찬송427/주기도문

 

 

애통하는 자의 복

 

상에는 가슴을 치는 아픔으로 인해 애통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이 성도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애통하는 자의 복은 무엇입니까?

 

본문의 팔복에 쓰인 애통이란 말은 헬라어로 펜테오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터져 나오는 슬픔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심장을 꿰뚫는 듯, 뼈를 깎는 듯,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러한 아픔을 겪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대강대강, 역경이나 고난도 없이 지낸 사람은 하나님도 대강대강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의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 가운데서 나의 한계를 절감한 사람은,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그때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나를 보호하시고 안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신자의 복입니다.

 

다윗의 예를 살펴보면 다윗은 19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사랑하는 아들은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다윗의 사랑은 극진했습니다. 그런데 그 압살롬이 다윗을 배반해 반역했습니다. 그는 울면서 맨발로 예루살렘을 떠나는 등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당하는 배역으로 인하여 갈가리 찢어지는 마음이 됩니다. 이것이 애통입니다.

 

그 아픔으로 다윗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게 됩니까?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40:13)라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고통은 애통하는 마음으로 머물면 안 됩니다. 그 애통이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인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현재의 아픔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팔복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럼 애통하는 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죄를 직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의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면 다윗은 일생에 그의 자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한 죄입니다. 그는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 우리아도 죽이는 일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죄책감 없이 살고 있던 다윗에게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의 죄를 폭로합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처절하게 자아를 깨뜨립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애통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51:17) 그리고 본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통감하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고 죄를 지을 준비가 되어 있고, 죄악 속에 묻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붙잡아 주지 않으면 죄의 구덩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펜테오의 어원은 히브리어 페사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페사흐라는 단어는 애통하다라는 뜻과 동시에 유월절(Passover)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애통은 유월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때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장자가 죽지 않았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양의 피로 상징되는 예수의 피’, 그 보혈만이 우리를 죄로 인한 죽음에서 면하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통(펜테오)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패스오버’(Passover)된 구원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이것이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이 은혜가 삶속에 늘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